J.F.K
- 장르
- 범죄,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
- 국가 / 연도
- 미국 1991
- 감독
- 배우
- 내 점수
- 9
- 외부 점수
- 9.46
- 종합 점수
- 18.46
- 조회수
- 93
"저항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죄악이다(To Sin By Silence When We Should Protest Makes Cowards Out Of Men)"
- E.W. 윌콕스(Ella Wheeler Wilcox)
1963년 12월 22일 오후 12시 30분, 텍사스주, 달라스. 눈부신 햇살를 받으며 달리 풀라자를 달리는 콘버터블 리무진을 향해 세 발의 총탄이 날았다. 첫 총탄은 케네디(John F. Kennedy)를 명중시키고, 앞자석에 타고 있는 텍사스 주지사 코날리에게 명중하여 나갔다. 다른 한 발은 표적이 빗나가 길에 맞았고 콘스탄트 파편이 튀어 서있던 사람의 뺨에 튀었다.
느리게 움직이고 있던 차가 나무판자 있는 곳에 왔을 때 또 한발의 강력한 총탄이 그의 머리에 명중했고, 대통령의 몸을 뒤로 밀어냈다. 그리고 총격이 있은지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24세의 백인 남자가 체포되었는데 해병대 출신의 하비 오스왈드는 한때 소련에 망명한 적이 있으며, 그해 여름에는 뉴올리언즈에서 카스트로 지지운동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23시간 동안 계속된 수사에서, 오스왈드는 계속 "아무도 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일 뒤, 경찰서에서 호송되던 오스왈드는 텔레비젼으로 중계되는 앞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를 쏜 것은 잭 루비라는 자로 스트립 쇼를 하는 술집 주인이었다.
그리고 잭 루비 역시 곧 감옥에서 사망했다.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린드 비 죤슨은 국내 여론과 외국의 의심을 무마하기 위해 급히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한 진상조사 위원회를 열었다. 대법원의 얼 워렌 판사를 의장으로 하는 이 위원회에서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포함한 여러 자료를 토대로 '워렌 보고서'를 작성, 이 사건이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이라고 결론지었고, 이 사건은 공식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그 뒤로 수많은 학자와 수사관들은 이 위원회의 수사방법에 의문을 제기했고, 자기 나름대로의 수사를 시작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짐 개리슨 검사로 그는 JFK 암살 사건의 배후인물을 재판장에 최초로 세운 사람이다. 이때 게리스 검사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주는 X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마치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에 등장하는 두 기자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어었던 딥스 루트같은 인물이다.
X는 게리스에게 누가, 어떻게 케네디를 죽였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케네디를 죽였는가"가 사건의 본질이라고 얘기하면서 게리슨에게 당신의 승리는 예측할 수는 없지만은 사실을 들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면서 그를 격려한다. 하지만 게리슨이 유력한 증인으로 법정에 세우고자하는 사람은 차례로 의문사 당하고 게리슨 팀 내에서 조차 내분이 일어날 정도로 게리슨은 곤궁에 처한다. 63년에 일어나 종결된 지 6년 후인 1969년 게리슨은 JFK 저격사건의 배후 인물로 남부지역에서 입김이 센 경제인 클레이 쇼를 기소해서 법정에 세우는데...
++
역사 속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케네디 암살 사건을 재추적한 영화. 영화 <플래툰>의 올리버 스톤 감독과 케빈 코스트너의 호흡이 일치한 작품이다. 특히 뉴올리언스의 짐 개리슨 검사 역을 맡아 관객으로 하여금 문제 의식을 상기시키는 케빈 코스트너의 날카로운 연기가 출중하다. 사실 이 영화는 케네디 암살사건을 찍은 기록 필름을 토대로 마치 현재 재수사에 돌입한 것처럼 치밀하게 사건을 재구성한 것이 특징이고, 그것이 미국 내에서 큰 논란을 일으킨 요인이다. 즉 실제의 기록 필름과 허구를 뒤섞은 그의 영화적 수법은 매우 강력하면서도 진실을 혼동시키는 효과를 낳지 않느냐는 다양한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이다. 어떻든 올리버 스톤은 60년대의 해묵은 미스테리를 현재의 역사로 도출시키는 이슈메이커로서 충분한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당시 미국에 새 기운을 불어넣던 민주당 출신의 젊은 대통령 케네디가 보수적인 정보기관과 군부의 힘을 약화시키고, 독점적인 기업의 폐해를 줄이려고 한 것 때문에 피살되었다는 가설은 매우 일리가 있다. 하지만 역시 이 영화에서도 그런 가설에 힘을 실을 뿐,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없는 상태다. 다만 올리버 스톤 감독은 예리한 정치의식을 바탕으로 총체적 진실을 찾겠다는 강렬한 의지와 60년대 역사를 새로 쓰겠다는 입장을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1963년 12월 22일 오후 12시 30분, 텍사스주, 달라스. 눈부신 햇살를 받으며 달리 풀라자를 달리는 콘버터블 리무진을 향해 세 발의 총탄이 날았다. 첫 총탄은 케네디(John F. Kennedy)를 명중시키고, 앞자석에 타고 있는 텍사스 주지사 코날리에게 명중하여 나갔다. 다른 한 발은 표적이 빗나가 길에 맞았고 콘스탄트 파편이 튀어 서있던 사람의 뺨에 튀었다.
느리게 움직이고 있던 차가 나무판자 있는 곳에 왔을 때 또 한발의 강력한 총탄이 그의 머리에 명중했고, 대통령의 몸을 뒤로 밀어냈다. 그리고 총격이 있은지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24세의 백인 남자가 체포되었는데 해병대 출신의 하비 오스왈드는 한때 소련에 망명한 적이 있으며, 그해 여름에는 뉴올리언즈에서 카스트로 지지운동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23시간 동안 계속된 수사에서, 오스왈드는 계속 "아무도 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일 뒤, 경찰서에서 호송되던 오스왈드는 텔레비젼으로 중계되는 앞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를 쏜 것은 잭 루비라는 자로 스트립 쇼를 하는 술집 주인이었다.
그리고 잭 루비 역시 곧 감옥에서 사망했다.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린드 비 죤슨은 국내 여론과 외국의 의심을 무마하기 위해 급히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한 진상조사 위원회를 열었다. 대법원의 얼 워렌 판사를 의장으로 하는 이 위원회에서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포함한 여러 자료를 토대로 '워렌 보고서'를 작성, 이 사건이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이라고 결론지었고, 이 사건은 공식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그 뒤로 수많은 학자와 수사관들은 이 위원회의 수사방법에 의문을 제기했고, 자기 나름대로의 수사를 시작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짐 개리슨 검사로 그는 JFK 암살 사건의 배후인물을 재판장에 최초로 세운 사람이다. 이때 게리스 검사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주는 X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마치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에 등장하는 두 기자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어었던 딥스 루트같은 인물이다.
X는 게리스에게 누가, 어떻게 케네디를 죽였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케네디를 죽였는가"가 사건의 본질이라고 얘기하면서 게리슨에게 당신의 승리는 예측할 수는 없지만은 사실을 들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면서 그를 격려한다. 하지만 게리슨이 유력한 증인으로 법정에 세우고자하는 사람은 차례로 의문사 당하고 게리슨 팀 내에서 조차 내분이 일어날 정도로 게리슨은 곤궁에 처한다. 63년에 일어나 종결된 지 6년 후인 1969년 게리슨은 JFK 저격사건의 배후 인물로 남부지역에서 입김이 센 경제인 클레이 쇼를 기소해서 법정에 세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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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케네디 암살 사건을 재추적한 영화. 영화 <플래툰>의 올리버 스톤 감독과 케빈 코스트너의 호흡이 일치한 작품이다. 특히 뉴올리언스의 짐 개리슨 검사 역을 맡아 관객으로 하여금 문제 의식을 상기시키는 케빈 코스트너의 날카로운 연기가 출중하다. 사실 이 영화는 케네디 암살사건을 찍은 기록 필름을 토대로 마치 현재 재수사에 돌입한 것처럼 치밀하게 사건을 재구성한 것이 특징이고, 그것이 미국 내에서 큰 논란을 일으킨 요인이다. 즉 실제의 기록 필름과 허구를 뒤섞은 그의 영화적 수법은 매우 강력하면서도 진실을 혼동시키는 효과를 낳지 않느냐는 다양한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이다. 어떻든 올리버 스톤은 60년대의 해묵은 미스테리를 현재의 역사로 도출시키는 이슈메이커로서 충분한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당시 미국에 새 기운을 불어넣던 민주당 출신의 젊은 대통령 케네디가 보수적인 정보기관과 군부의 힘을 약화시키고, 독점적인 기업의 폐해를 줄이려고 한 것 때문에 피살되었다는 가설은 매우 일리가 있다. 하지만 역시 이 영화에서도 그런 가설에 힘을 실을 뿐,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없는 상태다. 다만 올리버 스톤 감독은 예리한 정치의식을 바탕으로 총체적 진실을 찾겠다는 강렬한 의지와 60년대 역사를 새로 쓰겠다는 입장을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