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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

클레오파트라 (Cleopatra)

장르
드라마
국가 / 연도
미국 1963
감독
배우
내 점수
0
외부 점수
8.17
종합 점수
8.17
조회수
70
기원전 5세기경. 이집트는 이미 문명의 발달로 위대한 국가 체계가 확립된 후다. 하지만 로마의 장군 시저(렉스 해리슨)는 이집트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이집트를 손에 넣고, 여왕 클레오파트라(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사랑에 빠진다. 영웅 기질을 타고난 시저는 이집트를 평화롭게 통치해 나가지만 그에 반대하는 무리들이 음모를 꾸민다. 시저의 아들 브루투스(케네스 헤이)는 시저를 제거하려는 모임데 가담하게 되어 아버지를 배신할 운명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받아 들이게 된다. 치밀하고 뛰어난 통솔력을 가졌지만 시저는 자신을 배신할 세력이 바로 자신의 아들과 부하들이라는 사실은 눈치 채지 못한다. 결국 브루터스는 시저에게 칼을 꽂고 만다. 시저의 죽음으로 이집트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지고 이를 평정하기 위해 안토니우스(리차드 버튼)가 나선다. 재치와 용기, 카리스마로 무장한 안토니우스는 이집트의 혼란을 수습한데다가 클레오파트라의 신임과 사랑까지 얻어 제 2의 통치자가 된다. 그러나 계속되는 주변 국가와의 마찰과 부하들의 반란 음모 속에서 이집트는 다시 혼란에 빠지고 안토니우스는 중심을 못잡고 방황하고 만다. 클레오파트라 역시 언제 암살 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최고의 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자결을 결심한다.

++

코가 1센치만 낮았어도 역사가 바뀌었을거란 구절의 코 주인 클레오파트라가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 진건 10회도 넘는다. 그중 가장 유명한 영화는 이 영화와 1934년작으로 세실 B. 드밀이 감독하고 당대 최고의 팜프 파탈로 인기를 모았던 클로데트 콜베트 주연의 <클레오파트라>, 그리고 1946년 가브리엘 파스칼 감독이 비비안 리를 기용해서 만든 <시저와 클레오파트라>가 있다. 하지만 단연 규모면에서나 스펙타클한 볼거리 면에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클레오파트라>만한게 없다. 1963년 제작 당시 6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거덜낸 영화로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화려한 궁전들의 세트를 손수 지었고, 배우들의 의상만 해도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볼거리로 인해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력을 쉽게 판달할수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조셉 L. 맨키비츠 감독은 <이브의 모든 것>, <지난 여름 갑자기>등으로 연출력을 인정 받은 감독이므로 기본 이상의 실력은 발휘한다.

역사를 다룬 영화를 볼때 우리는 흔히 내용의 사실성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하는데 <클레오파트라>는 정사에 가까운 사실보다는 시대가 요구하는 바대로 각색한 내용이므로 영화 내용에 사실성이 결핍되었다고 타박하지는 말아야 한다. 클레오파트라를 사악한 요부로 묘사하는 역사가 있는가하면 남성들에게도 굽히지 않는 여걸로 묘사한 역사도 있고, 전쟁을 불러 일으킬 만한 미모를 가졌다는 설이지만 그렇게 빼어난 미모는 아니었다는 설도 있다. 이 영화에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보여준 클레오파트라는 미모와 사랑만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다.

영화 촬영 당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가수 에디 피셔(여배우 캐리 피셔의 아버지이자 데비 레이놀즈의 전남편)와 결혼한 상태였지만 역시 유부남이었던 리차드 버튼과 사랑에 빠져 이혼 소송에 휘말린다. 에디 피셔는 쉽게 이혼을 수락했지만 리차드 버튼의 아내가 이혼을 거절해 어려움을 겪다가 그녀가 끝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자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된다. 당시 관객들은 영화 자체를 즐기러 극장에 오기보다는 당대 최고 스타들의 스캔들의 흔적를 느껴 볼까하는 마음에서 극장을 찾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