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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쇼 (QUIZ SHOW)

장르
드라마
국가 / 연도
미국 1994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
배우
존 터투로, 롭 모로우
내 점수
8
외부 점수
8.5
종합 점수
16.5
조회수
72
1958년, NBC 방송국이 텔레비젼 퀴즈 쇼의 엄청난 시청율 기록에 힘입어 방송의 위력을 과시할 무렵, '트웬티 원(Twenty One)'은 방송 제작자 댄 앤라이트(Dan Enright: 데이비드 페이머 분)가 고안해낸 퀴즈쇼 프로로, 이 쇼에는 두 명의 참가자가 출연하며 이들은 각기 두 개의 부쓰 안에 들어가서 우열을 가린다. 이 부쓰는 스테이지 중앙의 사회자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분리되어있을 뿐만아니라 상대 참가자에게 주어지는 질문이나 문제의 정답을 들을 수 없도록 완전히 밀폐되어 있다. 사회자에 의해 무작위로 선택되는 각 문제는 난이도에 따라 1점에서 최고 12점까지 배정되어 있으며 몇 문항을 맞추든 이 쇼의 타이틀 숫자가 암시하는 21점을 먼저 따낸 참가자가 우승하게 된다. 만일 한 참가자가 10점이 배정된 문제를 맞추어 21점을 따내면 단 두 문제로 간단하게 우승할 수도 있다.

1956년 11월 28일, 당시 연전연승 가도를 달리던 퀴즈 챔피언 허비 스템펠(Herbie Stempel: 존 터투로 분)은 콜롬비아 대학교수 찰스 반 도렌(Charles Van Doren: 랄프 피너스 분)의 도전을 받는다. 이들의 대결은 3주가 동점을 기록하였고, 마침내 반도렌이 새 챔피언이 되었다. 그러나 연승가도를 달리다가 프로그램 편성자의 각본에 의해 밀려났다고 생각한 허비 스템펠은 새 챔피언을 공개적으로 비방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새 챔피언 찰스 반 도렌은 콜롬비아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던 인물로, 이번 방송 출연으로 '타임'과 '라이프'지의 표지 모델로 선정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게 된다. TV 시청자의 우상이 된 그는, 아버지 마크 반 도렌(Mark Van Doren: 폴 스코필드 분)이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는 시인이며 어머니 도로시 반 도렌(Dorothy Van Doren: 엘리자베스 윌슨 분) 역시 소설가이자 잡지 편집자였다. 매주 수요일 밤에 방송되던 이 퀴즈쇼는 찰스 반 도렌의 우승 기록이 깨지지 않은 채 시청률이 증가하자, 인기 코미디 프로 <내 사랑 루시>의 시청률에 대적하며 일요일 밤 시간대로 편성이 개편될 정도였다. 다음해 3월까지는 <내 사랑 루시>의 시청률을 따라잡지 못했으나 당시 자그마치 34.7%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퀴즈쇼 프로는 빨간 머리 루시의 프로와 결쟁을 벌인 NBC의 첫 시도이기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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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퀴즈쇼 프로그램 '트웬티 원(Twenty One)'에 얽힌 사건들과 그로 인해 졸지에 인생이 뒤바껴버린 세 사람의 실존 인물에 관한 이야기로서, 텔레비젼의 위력과 그에 기만당한 미국인의 양심을 그린 명우 로버트 레드포드의 4번째 연출 작품이다. 리차드 N. 굿윈(Richard N. Goodwin)의 '미국 회고록(Remembering America: A Voice From The Sixties)'을 원작으로 '트웬티 원' 프로에 출연했던 한 참가자가 프로그램을 기소함으로써 미국인을 놀래게 한 방송 스캔들을 소재로, 당시의 퀴즈쇼는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수직 상승과 부의 향유를 약속받은 미국의 전후 세대들에게 어메리칸 드림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었다. 1958년까지 36개의 퀴즈쇼 프로가 난립했고 주당 편성 시간이 평균 50시간 가까이 되었다. 그 이유는 물론 참가자의 열띤 경쟁탓만이 아니라, 상업적으로 잘 포장된 참가자의 퍼스넬리티, 그리고 돈과 명성이 주는 강력한 유혹에 있었기 때문이다. 로브 모로우가 사건의 흑막을 파헤치는 조사관 리차드 굿윈 역을 연기했으며, 퀴즈 챔피언인 존 터투로와 랄프 파인즈 등 주연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다. 시나리오 각색과 연출, 스탭진들의 솜씨 모두 수준급인 작품.

퀴즈쇼는 라디오와 함께 태어나 TV가 나오면서 원숙기를 맞았다. 인기를 크게 얻은 최초의 쇼 가운데 하나는 '아이큐 박사(Dr. I.Q.)'라는 프로로 청중 속에서 나온 지원자에게 '멘탈뱅커'라는 박사가 질문을 던지는 프로였다. 1938년 최초의 진짜 지능을 겨루는 퀴즈쇼가 나왔는데, '인포메이션 플리스(Information Please)'라는 제목의 이 패널쇼는 프랭클린 P. 애덤스, 존 키란과 같은 박식한 단골 손님과 유식한 초대 손님 둘이 매주 질문 공세를 받는 역을 맡았다. 시청자에게 질문을 하는 종래의 게임쇼와는 정반대로, 청중이 질문을 던지고(질문이 어려울 수록 좋았다) 전문가들이 답변을 못하고 쩔쩔 매는 것을 보고 즐기는 프로였다. 패널리스트(단골손님과 초대손님)들은 단순히 질문에 대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재치있는 대화를 주고 받도록 유도했다. "레자 팔레비가 누구지요?" 단골 사회자 클립튼 패디맨이 질문을 던지면 손님으로 나온 존 간서는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페르시아의 통치자요" "Are you shah?"(shah - 왕이라는 뜻이지만 sure와 발음이 비슷하다, Are you sure? - 틀림없소?)라고 클립튼 패디맨이 다시 묻자 존 간서는 지체없이 대답했다. "Sultanly."(Sutlan은 역시 회교국가의 왕이라는 뜻인데, Certainly(틀림없다)와 발음이 비슷하다)

'인포메이션 플리스'가 인기를 끌자 '퀴즈 키즈'라는 어린이 프로가 나왔다. 이중 재미있는 장면을 소개하면, "알리바바의 도둑들의 수를 다섯으로 나눠서, 묵시록에 나오는 기사의 수를 더하고, 거기서 세상을 만드는데 걸린 날수를 빼라." 당시 14세의 신시아 클라인은 즉석에서 "다섯"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13세의 버지니아 부즈가 "여섯"이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도둑이 40명인데, 그것을 5로 나누면 8이고, 거기에다 기사 4명을 더하면 12가 되고 창세기에 나오는 세상을 만드는 날수 6을 빼면 5가 아니라 6이라는 합계가 나온다는 것이다. "7일째는 하느님이 푹 쉬셨거든요" 버지니아는 자랑스럽게 외쳤다. 이 프로에 출연하는 아이들은 100달러짜리 전쟁 공채를 받았고, 질문이 채택된 라디오 청쥐자는 휴대용 라디오를 상으로 받았다. 다른 쇼도 상금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일례로 '갖거나 놔두거나(Take it or leave it)라는 프로에서는 최종 단계의 질문을 "64달러짜리 질문"이라고 했다.

1950년대초 TV가 퀴즈프로를 채택하자 상금은 많아지고 그와 함께 시청률자의 열기도 높아졌다. 'The Big Surprise', 'The Big Payoff', 'Break The Bank', 'Strike It Rich', '6만 4000달러짜리 질문' 등의 프로는 흥분한 시청자들에게 일확천금과 순간적인 영광을 동시에 꿈꿀 기회를 주었다. '6만 4000달러짜리 질문'은 인기가 얼마나 높았던지, 한때 시청률 85%에 육박했다. 화장품 회사 레브론이 스폰서가 된 그 쇼가 갖는 매력의 원천은 퀴즈 참가자를 수주일 계속 등장시키면서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상금을 점점 늘려 서스펜스를 고조시키는 데 있었다. 참가자는 한 전문분야에 백과사전적인 지식이 있으면서도 전문인이 아닌 사람들 가운데서 뽑았다. 예를 들면, 그랜드 오페라에 일가견이 있는 브롱크스에 사는 구둣방 주인, 고급 요리를 잘 아는 해병대 대위 등 시청자가 친근감을 가질 만한 보통사람들이었다. 레브론 사는 5천만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방송 덕분에 첫해 매상이 200%나 늘어났다.

이러한 프로들의 전성기에는 연간 프로제작비와 TV시간을 판 값을 합치면 1억 달러나 되었다. 이것이 퀴즈쇼가 망하게 되는 요인이 되었다. 점차 경쟁이 심해지는 시장에서 시청률을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 제작자들은 시청자들에게 인기있는 퀴즈 참가자에게 질문에 대한 힌트와 해답을 슬쩍 건네주는 사례가 있었다. 1955년 '도토(Dotto)'라는 프로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출연자 하나가 제작진이 어느 경쟁자에게 미리 힌트가 담긴 카드를 건네주는 것을 보고 연방통신위원회에 진정했다. 또 이 영화의 소재가 된 '트웬티 원'에서는 이긴 출연자가 그 쇼를 조작했다고 폭로하여 가장 유명한 퀴즈쇼 출연자 찰스 반 도렌이 하원조사위에 출두하여 '트웬티원'에서 12만 9천달러를 따낼 때 자신도 그런 도움을 받았음을 시인했다. 시청자들은 실망하게 되었고 대중의 물의를 두려워하게 된 스폰서들이 떨어져 나가자 퀴즈쇼는 거의 하룻밤 사이에 망하고 말았다. 1960년대 중반에 게임쇼가 다시 나타나긴 했으나 그런 프로가 내건 상금은 한결같이 적었고, 협자의 소지를 없애기 위한 규칙은 한결 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