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Ali)
- 장르
- 드라마, 액션
- 국가 / 연도
- 미국 2001
- 감독
- 배우
- 내 점수
- 0
- 외부 점수
- 6.87
- 종합 점수
- 6.87
- 조회수
- 70
"나는 복싱보다 더 위대하다!!"
1964년 2월26일, 22세의 카시우스 클레이는 세계 헤비급 챔피언, 소니 리스톤의 도전자로 링 위에 선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며 당당하고 거침없이 자신의 승리를 장담하던 그는 8라운드에서 리스톤을 KO로 쓰러뜨리며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한다.
그러나 1967년,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함으로써 부당하게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시합은 물론 출국조차 금지당한다. 이로 인해 알리는 권투 선수로서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시간을 안타깝게 흘려보내게 된다.
1971년, 3년 5개월의 세월이 흐르고서야 재판에서 극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게 된 알리는 곧바로 링에 복귀하지만 이미 왕년의 기세는 잃고 말았다.
1971년 당시의 헤비급 챔피언 조 프레이저와의 대전에서 15라운드 판정패를 당하며 타이틀 탈환에 실패한 것이다. 프레이저에의 설욕을 다짐하며 다시 2년의 세월을 보낸 알리. 그러나 챔피언 벨트는 2라운드만에 프레이저를 KO시킨 조지 포먼에게 넘어간 뒤였다.
이제 1974년, 권투 선수로서는 은퇴를 고려해야 한다고 평가되는 32세가 된 알리. 맨주먹 하나로 부당하게 빼앗긴 자신의 챔피언 벨트를 되찾기 위해 포먼에게 마침내 공식 도전한다.
한편, 포먼은 24세의 젊은 나이에 40연승의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는 엄청난 파괴력의 소유자. 언론도, 관중도 포먼의 압도적인 승리를 장담했다.
알리만이 자신의 승리를 주장했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시합 5일전, 컨디션 최종 정리 스파링 중 포먼은 눈 주위에 부상을 입어 부득이 시합을 6주 연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1974년 10월30일, 전세계 10억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알리와 조지 포먼의 대전을 알리는 공이 울리는데...
++
타임지와 CNN이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영웅이란 호칭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알리는 이 시대 전설적인 복서로 7전8기의 드라마틱한 삶을 산 주인공이기도 하다. 알리는 1942년 '카시우스 마셀러스 클레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켄터키주 루이스빌에서 태어났다.
지독하게 인종차별이 심했던 켄터키주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금의환향했다. 클레이는 흑인 출입이 불가능했던 백인 식당에 들어갔다가 몰매를 맞고 쫓겨난 뒤, 울분을 참지 못하고 금메달을 오하이오 강물에 던져버렸다. 동시에 백인들이 지어준 노예의 이름인 '카시우스 마셀러스 클레이'란 이름도 버렸다. 그리고 유색 인종을 대변하는 저항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 후, 프로 권투선수로 전향한 그는 1964년 챔피언 소니 리스톤을 KO로 쓰러뜨리며,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 조 프레이저, 켄 노턴 등과 '세기의 대결'을 벌이며 전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세 차례나 차지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일명 '떠벌이'로 불리울만큼 링 위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입담과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거침없는 언변과 현란한 파이트 테크닉, 헤비급 선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스피드, 언제든지 한방에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는 파워, 그리고 카리스마. 프로 복싱 사상 이 모든 것들을 한 몸에 겸비한 선수는 무하마드 알리 뿐이었다. 로마 올림픽에서 극적으로 금메달을 따낸 뒤, 4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알리는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 시대 기적과도 같은 존재이다.
실존하고 있는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를 잘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담감으로 알리 역할을 5년동안 거절했던 윌 스미스는, 마이클 만 감독이 제시한 '윌 스미스가 알리 되기'라는 완벽한 커리큘럼을 보고 마침내 출연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가 우선적으로 시도한 것은, 신체적인 변화였다. 90kg의 날씬한 '배우'에서 108kg의 '헤비급 복싱 선수'로 육체적인 탈바꿈을 시도한 윌 스미스는 일주일에 5일, 하루에 6시간씩 운동을 하며 체력을 단련시켰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알리의 페인트와 전성기 시절 상대방을 교란시키던 어깨와 머리의 날렵한 움직임 등을 익히기 위해 철저한 육체적 훈련에 돌입했다.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단 한 장면에서도 대역을 쓰지 않았던 윌 스미스는 실제 프로 복서들의 강한 펀치를 맞아가며 알리의 불굴의 의지를 배우고 싶어했다.
그 다음으로 그가 시도한 것은 '영혼의 변화'였다. 뛰어난 언변으로 '떠벌이 챔피언'이라고도 불리던 알리만의 독특한 말투, 습관 등 알리가 갖고 있는 생활 전반의 모든 특성들을 마치,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몸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알리의 빠르면서도 랩을 하는 듯한 독특한 말투를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언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맹훈련했는데, 배우로 스크린에 데뷔하기 이전 랩퍼로서 그래미상을 수상하는 등 인기를 누렸던 윌 스미스는 알리의 거침없는 언변과 억양을 연습하는 일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1964년 2월26일, 22세의 카시우스 클레이는 세계 헤비급 챔피언, 소니 리스톤의 도전자로 링 위에 선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며 당당하고 거침없이 자신의 승리를 장담하던 그는 8라운드에서 리스톤을 KO로 쓰러뜨리며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한다.
그러나 1967년,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함으로써 부당하게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시합은 물론 출국조차 금지당한다. 이로 인해 알리는 권투 선수로서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시간을 안타깝게 흘려보내게 된다.
1971년, 3년 5개월의 세월이 흐르고서야 재판에서 극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게 된 알리는 곧바로 링에 복귀하지만 이미 왕년의 기세는 잃고 말았다.
1971년 당시의 헤비급 챔피언 조 프레이저와의 대전에서 15라운드 판정패를 당하며 타이틀 탈환에 실패한 것이다. 프레이저에의 설욕을 다짐하며 다시 2년의 세월을 보낸 알리. 그러나 챔피언 벨트는 2라운드만에 프레이저를 KO시킨 조지 포먼에게 넘어간 뒤였다.
이제 1974년, 권투 선수로서는 은퇴를 고려해야 한다고 평가되는 32세가 된 알리. 맨주먹 하나로 부당하게 빼앗긴 자신의 챔피언 벨트를 되찾기 위해 포먼에게 마침내 공식 도전한다.
한편, 포먼은 24세의 젊은 나이에 40연승의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는 엄청난 파괴력의 소유자. 언론도, 관중도 포먼의 압도적인 승리를 장담했다.
알리만이 자신의 승리를 주장했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시합 5일전, 컨디션 최종 정리 스파링 중 포먼은 눈 주위에 부상을 입어 부득이 시합을 6주 연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1974년 10월30일, 전세계 10억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알리와 조지 포먼의 대전을 알리는 공이 울리는데...
++
타임지와 CNN이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영웅이란 호칭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알리는 이 시대 전설적인 복서로 7전8기의 드라마틱한 삶을 산 주인공이기도 하다. 알리는 1942년 '카시우스 마셀러스 클레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켄터키주 루이스빌에서 태어났다.
지독하게 인종차별이 심했던 켄터키주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금의환향했다. 클레이는 흑인 출입이 불가능했던 백인 식당에 들어갔다가 몰매를 맞고 쫓겨난 뒤, 울분을 참지 못하고 금메달을 오하이오 강물에 던져버렸다. 동시에 백인들이 지어준 노예의 이름인 '카시우스 마셀러스 클레이'란 이름도 버렸다. 그리고 유색 인종을 대변하는 저항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 후, 프로 권투선수로 전향한 그는 1964년 챔피언 소니 리스톤을 KO로 쓰러뜨리며,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 조 프레이저, 켄 노턴 등과 '세기의 대결'을 벌이며 전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세 차례나 차지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일명 '떠벌이'로 불리울만큼 링 위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입담과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거침없는 언변과 현란한 파이트 테크닉, 헤비급 선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스피드, 언제든지 한방에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는 파워, 그리고 카리스마. 프로 복싱 사상 이 모든 것들을 한 몸에 겸비한 선수는 무하마드 알리 뿐이었다. 로마 올림픽에서 극적으로 금메달을 따낸 뒤, 4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알리는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 시대 기적과도 같은 존재이다.
실존하고 있는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를 잘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담감으로 알리 역할을 5년동안 거절했던 윌 스미스는, 마이클 만 감독이 제시한 '윌 스미스가 알리 되기'라는 완벽한 커리큘럼을 보고 마침내 출연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가 우선적으로 시도한 것은, 신체적인 변화였다. 90kg의 날씬한 '배우'에서 108kg의 '헤비급 복싱 선수'로 육체적인 탈바꿈을 시도한 윌 스미스는 일주일에 5일, 하루에 6시간씩 운동을 하며 체력을 단련시켰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알리의 페인트와 전성기 시절 상대방을 교란시키던 어깨와 머리의 날렵한 움직임 등을 익히기 위해 철저한 육체적 훈련에 돌입했다.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단 한 장면에서도 대역을 쓰지 않았던 윌 스미스는 실제 프로 복서들의 강한 펀치를 맞아가며 알리의 불굴의 의지를 배우고 싶어했다.
그 다음으로 그가 시도한 것은 '영혼의 변화'였다. 뛰어난 언변으로 '떠벌이 챔피언'이라고도 불리던 알리만의 독특한 말투, 습관 등 알리가 갖고 있는 생활 전반의 모든 특성들을 마치,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몸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알리의 빠르면서도 랩을 하는 듯한 독특한 말투를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언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맹훈련했는데, 배우로 스크린에 데뷔하기 이전 랩퍼로서 그래미상을 수상하는 등 인기를 누렸던 윌 스미스는 알리의 거침없는 언변과 억양을 연습하는 일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