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지미 카터와 제럴드 포드의 선거전은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은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7,000만 달러에 가까운 금액을 쏟아 부었는데, 이 기록은 최소한 20세기 말까지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간 선거유세로 기록된다.
2002년 3월 휴렛팩커드(HP)와 컴팩의 합병에 관한 위임장 경쟁은 1억 달러 이상의 금액이 소요되었다. 26년간의 인플레이션을 감안해도 대단한 수치이다. 도대체 기업이 합병을 하고 말고 하는 문제에 대해서 왜 대통령 선거전 이상의 금액이 뿌려진 것일까? 기업 합병과 선거전이 무슨 공통점이 있는 것일까?
『칼리 피오리나(원제 Perfect Enough)』는 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준다. HP의 스타 여성 CEO 피오리나는 왜 창업자 세대와의 전쟁을 불사하면서까지 컴팩과의 합병을 밀어붙였는가, 그 막전막후가 이 책에는 실려있다. 물론 그 공과에 대해서는 HP의 앞날이 평가의 기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피오리나는 여성 CEO라는 점 외에도, ‘과거의 경영’에 종말을 고하는 새로운 리더십의 세대교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을 만하다.
HP는 최초의 실리콘 밸리 기업으로 불리운다. 창업자인 빌 휴렛과 데이브 팩커드는 모든 벤처인의 꿈이요 희망이다. 37년 자동차 창고에서 창업한 이들은 환상적인 조합으로 회사를 운영해 나간다. (마치 소니의 모리타 아키오와 이부카 마사루를 보는 느낌이다). HP가 탁월한 성과를 창출하면서 유명한 기업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들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HP Way’이다.
‘HP Way’란 무엇인가. 바로 HP를 경영하는 방식, HP내에 면면히 흐르는 강력한 기업문화를 지칭한다. 물론 이는 창업자의 경영철학에서 출발한다. 공동창업자인 빌 휴렛은 “‘HP Way’란, 사람들은 좋은 일과 창의적인 일을 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신념 하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탁월한 성과는 저절로 달성할 수 있다”고 갈파한 바 있다. 결국 가족과 같은 믿음이‘HP Way’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창업자들은 은퇴를 하고, 이후 두 번의 CEO 교체가 있었다. 99년, 유구한 HP의 역사에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외부로부터 CEO를 영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당시 HP는 신경제 기업 중 가장 뒤쳐진 회사로 취급되었다.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파격적인 조치가 불가피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여성 CEO라 불리우는 칼리 피오리나를 적임자로 선택한다.
칼리 피오리나. AT&T로부터 루슨트 테크놀로지를 성공적으로 분사시킨 장본인. 1998년 『포춘』지가 선정한 미 국내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성기업인. 오프라 윈프리보다도 지명도가 높은 여성. 그녀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이만큼 화려하다.
스탠포드에서 역사를 전공한 그녀가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은 AT&T였다. 25세가 되던 80년이었다. 그녀는 회계부서 대신 영업직인 통신서비스 판매 부문 선택했는데, “남자들이 득실대는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였다”고 술회한다. 89년에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신생 네트워크시스템 부문으로 이동한다. 사실 새로운 사업부로 간다는 것은 다들 꺼리는 일이다. 새롭게 일을 배워야 하고, 초반기에는 밤낮없이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기꺼이 선택했다. 그리고 현장을 다니며 최신 네트워크기술 동향에 대해 경청했다.
그녀가 세간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96년 루슨트 테크놀로지 분사를 주도하면서였다. 당시 AT&T는 3개의 기업으로 분할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는데, 그녀가 루슨트의 분할을 주도했다. 회사명을 루슨트로 정하고 기업이미지(CI) 작업은 물론, 경영전략 수립 등을 손수 관장하였다. 다음해에는 루슨트 테크놀로지의 글로벌 서비스부문 CEO로 취임했다. 이 사업부는 피오리나의 지휘 하에 급속한 성장을 거듭한다. 그녀가 CEO로 재직한 2년 동안 주가는 12배가 뛰어오른다. 그녀의 주가 또한 그 이상 올랐음은 물론이다.
99년 7월 19일. 이 날은 칼리 피오리나뿐 아니라 전세계 여성단체가 기억할만한 날이다. 미국 20대 대기업 중 최초의 여성 CEO가 탄생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녀를 선택한 회사는 HP였다. “통신기술에 대한 전문성에다 전략 및 비전, 그리고 이를 설득하는 능력이 탁월해 신임 회장으로 만장일치로 선정했다”고 전임CEO 루이스 플렛은 말한다.
HP 63년 역사상 최초의 외부출신 CEO인 칼리 피오리나. 그녀가 연봉 9천만 달러에 HP사장으로 취임하기로 발표되자 HP의 주가는 2% 상승하였고, 루슨트의 주가는 2% 하락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는 이후 다른 CEO의 사례와 함께‘CEO의 브랜드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로 활용되었다. 주가란 그 회사의 미래를 현재가치로 환산한 것이다. CEO의 이동이 주가를 좌우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만큼 회사를 잘 경영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그녀의 브랜드 파워는 이미 이 정도로 높게 설정되어 있었다.
피오리나는“최고의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원점에서 시작하자”는 슬로건을 표방했다. HP와 피오리나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HP 임직원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HP는 10년만에 기업 브랜드 광고를 실시한다. 처음에는 TV화면에 작은 차고의 검은 윤곽만이 보인다. 다음 순간 목동의 피리소리처럼 맑은 음악이 들리고, 햇살을 받은 듯 차고의 붉은 지붕이 환하게 밝아온다. 그때 한 여성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주의를 집중시킨다.“이 곳은 진보주의자들의 일터입니다. 바로 이 차고에서 두 젊은이가 500달러의 자본금으로 한 산업을 창조했습니다.”
화면은 곧이어 시청자를 30년대로 안내한다. 상태가 좋지 않은 흑백필름에 HP가 탄생한 차고에서 데이브 팩커드와 빌 휴렛의 모습이 보인다. 갓 서른 살이 된 팔팔한 두 젊은이다. 팩커드는 회사의 첫 제품 중 하나인 상자 모양의 오디오 발진기를 들고 있다. 피오리나가 설명한다. “아이디어는 간단했습니다. 생활에 유용한 것을 만들지 못하면 차고를 떠나지 말자. 그것은 매우 간단하고도 진보적이었습니다.” 그녀가 내레이션을 하는 동안 카메라는 밝게 빛나는 차고를 비춘다. 차고의 문으로 다가가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비춰지다가 갑자기 피오리나의 얼굴이 크게 클로즈업된다. “빌 휴렛과 데이브 팩커드의 회사가 재창조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첫걸음을 내딛는 우리를 지켜보십시오!”이 광고는 당시 미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으며 HP의 직원, 소비자 모두“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피오리나는 자신감에 넘쳤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IT경제가 불황에 빠지면서 HP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면면히 내려오던 ‘HP Way’에 대해서도 과감한 개혁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직원존중과 자율성을 강조하는‘HP Way’는 조직원 자긍심의 원천이었다. 경기가 안좋은 상황에서도 감원보다는 감봉을 택하며 서로를 감쌌던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가 서서히 파괴되고 있었다.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불안감이 서서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피오리나는 2001년 9월 컴팩과의 합병을 발표한다. 매출액 874억 달러, 자산규모 564억 달러, 영업이익 39억 달러의 초거대기업의 등장을 예고한 것이다. 특히 PC부문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강력한 시장지배력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하지만 대주주로서, 그리고 창업자의 아들로서, 월터 휴렛은 HP의 강력한 전통이 파괴되는 것을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시카고 로욜라 대학의 키트 교수는“평상시에는 침묵하던 창업자의 후손들도 전문경영인이 부패했거나, 가문의 가치를 이어나가지 못하면 전면에 등장하기 마련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합병은 HP의 전통적 가치를 침해할 뿐더러 주주이익에도 반하는 행위인 것으로 인식한 것이다.
어차피 합병 여부는 주주총회에서 결정된다. 과반수의 주식을 확보할 수 있다면 합병을 막을 수 있다. 합병을 반대하는 HP 창업자의 아들 월터 휴렛과, 합병을 성사시켜야 하는 칼리 피오리나 간의 첨예한 경쟁은 마치 대통령 선거전을 방불케 했다.
찬성과 반대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논쟁이 가열되면서 감정적 싸움으로 확산되었다. 사실 초기에는 HP와 컴팩간 합병이 가져올 시너지 효과, PC사업의 사양산업 여부가 논쟁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후에는 극도의 감정대결로 치달은 것이다. 피오리나 측은“휴렛은 음악가이자 학자일 뿐 경영자로서의 능력에 의문이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주주들에게 발송했다. HP 양대가문은 합병반대를 호소하는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피오리나를 비난하는 전면광고를 『월스트리트저널』에 게재하기도 했다. 양측 의견의 논리적 타당성에 대해서도 월가 전문가의 의견이 갈렸다. 사실 타당성이 한쪽에 기울어져 있었다면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합병 찬반에 관한 대형사안이 발표되어도 양사의 주가 등락이 거의 없었다. 그만큼 합병을 호재로 보는 시각과 악재로 보는 시각이 팽팽하게 맞섰던 것이다.
2002년 3월 19일 주주총회의 표결 결과는 합병 성사의 가능성이 다소 높을 것으로 전망되었다. 피오리나측은 2% 정도 앞섰다고 주장하는 반면, HP 가문측은 득표율 차가 0.5%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피오리나가 승리를 선언했지만 공식적인 발표는 아니었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들도 합병찬성 결정이란 단정적 언급을 회피했다. “표차가 너무 근소해서 판정할 수 없다(too close to call)”는 표현이 대세였다. 표 차이가 오차한계내에 존재하기 때문에 번복 가능성이 상존했던 것이다.
이후 합병에 관한 최종 판단까지 공증절차 등 2개월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3%의 차이로 칼리 피오리나를 필두로 하는 합병팀이 최종적으로 승리한다. CEO인 피오리나의 카리스마적 영향력이 더욱 강화된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합병성사 이후 자신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경영 전반에 걸쳐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한다.‘HP Way’에 반하는 구조조정도 더욱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당시 합병회사의 가시적인 성과를 조속히 나타내기 위해서는 강도높은 구조조정과 1만5,000천 명 이상의 대규모 정리해고가 불가피했다. 피오리나 측에서도 합병 반대측에 대한 우호적인 제스처보다 실적과 성과로써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향후 이 사건은 HP가 높은 경영성과를 달성한다면 전문경영인의‘탁월한 선견력’으로, 그렇지 못하다면 전문경영인의‘탐욕’으로 기술될 것이다. 이 점에서 패스트 컴퍼니의 수석편집자이며 월스트리트저널 보도팀의 일원으로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던 저자 조지 앤더스는 어느 정도 피오리나를 두둔하는 쪽에 서있는 듯 하다. 하지만 HP와 컴팩의 합병을 다룬 또 다른 책『맞불(Backfire)』은 조금 다른 시각에서‘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두 책은 모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